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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국회의원 원혜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전.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들을 짓밟은 것은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였고, 그들이 피를 흘린 이유는 몇몇 권력을 탐하는 군인들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들의 진실은 외면당했고 기나긴 독재의 시절이 끝난후에야 진실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민주정부 10년동안 5.18 항쟁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승격되었고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십니까? 이명박 대통령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를 제외하고, 올 해로 3년 연속 5.18 기념식에 불참했습니다.

청와대는 "5.18 기념식 불참을 의도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면서 "오늘은 공식 일정(국제기구 사무총장 접견)외에도 비공식 일정들이 많아 서울이면 모를까 지방으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고 참석하지 못한 이유를 애써 변명하고 있지만 공교롭게 3년 연속 5.18에만 행사가 생기고 일정이 생겼다는 변명을 국민들은 이제 납득하지 못합니다.

5.18 기념식이 카이스트 개교 40주년 행사와 상주 자전거축전 개막행사, 경찰대학 졸업식보다도 그 의미가 과연 부족한 행사입니까?


비단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식 불참 뿐만이 아니라 현 정부들어 5.18 민주화운동과 기념식에 대한 현 정부 지지세력의 폄훼와 무시는 그 도를 넘고 있습니다.



지난해 행사에서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재창을 기념식 식순에서 빼고, '방아타령'을 틀려다가 유족과 심한 갈등을 겪고 일부 유족이 기념식 참석을 거부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또 작년 말 과거사진상규명위의 위원장인 뉴라이트 성향교수가 5.18을 반란이라고 지칭했던 사실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관련글: 광주민주화운동을 반란이라고 하는게 이 정부의 가치입니까?

100여개 보수 성향 단체들의 연합인 인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국정협)`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의 대표자들이 지난해 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해 `5·18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한글 및 영문 청원서를 제출한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5·18은) 북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광주에 침입해 북한 지령에 따라 광주 시민을 무차별 사살한 것`


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국제적으로 뻔뻔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현 정부의 지지세력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과연 알고 계십니까?

수 많은 민주 영령들이 그 피를 흘려 이룩한 것이 지금의 민주화 된 대한민국일진대 그들의 희생이 송두리채 부정당하는 지금의 현실. 5.18 유공자들이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자살하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럽구 한스러울 뿐입니다.

관련기사: [5.18 민주화운동 31주년] 5·18 유공자 지원 현실은…


이 정부에 요구합니다.

정치적 가치가 다르고 이상이 다를지라도 사실을 왜곡하고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려간 5.18운동을 모욕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아직도 광주에는 80년 5월의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대못을 박는 지금의 행위들을 멈추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30년 전 그 날, 광주에 진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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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불량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대학이라는 곳이 그랬습니다. 한 편으론 민주화를 열망하는 학생들과, 다른 한 편으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학생들이 모여있었던 곳. 막막한 세상에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학사 주점 한 귀퉁이에서 술을 기울이던 시절. 저는 두 번 제적을 당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에야 겨우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왔다는 기쁨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당시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생회 부활운동과 학원 민주화 투쟁의 바람이 불면서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17일에 계엄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다시 수배자가 되었고, 이리저리 도피하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5월 18일, 그 날.
광주에서 그런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 했습니다. 
잘못된 쿠데타에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시민들의 결연했던 의지도 알지 못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군인의 총칼 아래 죽임을 당한 사실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순간, 그 때의 충격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5월 18일 광주는 빚이라 말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지게된 큰 빚.
함께 있지 못 한 빚, 알지 못 하고 알려내지 못 했던 빚,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빚..

그렇게 빚을 진 채로, 아니 빚을 진 덕에 저는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기업인으로서도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계에 와서도 폭력 앞에 소신을 굽히거나 권력에 강제 당하는 일 없이, 그렇게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 그 날을 되돌아 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조금씩 갚고 있다 생각했던 그 빚이, 어느 새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광장은 굳게 닫혔고, 정부는 귀를 막고 있으며, 국민들은 어느새 말 한마디 잘못했다 잡혀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복리도 아닌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원금은 아니어도 이자는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갚은 줄 알았던 이자가 원금만큼이나 많아져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꾸 그 날을 잊으라, 잊어버리고 살라며 등을 떠밉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될까요? 
우리 모두는 30년 전, 그 날의 광주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잊는다고 갚아지는 것이 빚이면 좋겠지만, 빚을 잊어버리면 남는 것은 파산뿐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역사가 그 날을 딛고 서 있는데, 그 날을 잊으면 대체 어디로 가라고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빚 좀 갚아야겠습니다. 
더 이상은 역사를 뒤로 돌리며, 마음빚 늘려가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2008년 시청 앞 광장에서 울려퍼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 다들 기억하시겠지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그 날까지,
이제는 제대로 빚 갚으며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부끄럽지 않게 울려퍼지는 세상이 올 때까지,
정말 제대로 빚 갚으며 한번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참고>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 80년 초 민주화투쟁, 무림사건 
광주광역시 - 80년 봄의 학생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