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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부산 국제 영화제 말고도 우리나라엔 다양한 영화제가 존재합니다.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Puch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 PiFan)도 그중 하나지요. 1997년 1회를 시작으로, 오는 7월 말이면 14회가 치러지는 꽤 연륜이 쌓인 영화제 중 하나입니다. 1996년 처음 개최된 부산 국제 영화제와는 1년 터울인 셈이지요. 지금은 훨씬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 두 영화제가 규모면에서나 질적으로 가장 큰 영화제였습니다.
 
다만 제가 부천시장으로 당선된 첫 해인, 1998년에는 12월에 행사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를 제외하면 부천국제영화제는 첫 회부터 이번 14회까지 전부 여름에 열렸으니, 그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실은, 그랬습니다.

'영상 문화 도시'의 가능성을 보여준
부천 판타스틱 국제 영화제

어느 영화제나 다 그렇듯이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적자일 수 밖에 없는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1회 행사만 거창하게 진행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영화제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을 선별하고, 그들 나라에서 작품을 섭외하고, 이를 상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단순 입장료로 메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천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으로 취임해 보니, 1회 행사를 치루고 심각한 재정 손실이 생겼더군요. 그 때문에 영화제는 지속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하기는 아까웠습니다. 영상 문화 도시로 부천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살려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적극적인 후원회 사업 전개였습니다. 일종의 시민모금운동이었는데, 이를 통해 돈을 모으는 것은 물론 부천시민들로 하여금 영화제에 보다 큰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자는 숨은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시민의 후원금과 협찬 수입으로 첫 회 영화제의 손실액을 모두 갚고도 무려 1억 5000만 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고라 토론창 바로가기
영화제 지원금 삭감 관련 포스팅<대한민국 좀먹는 '좌파 딱지' 방송계 이어 문화계도>

이렇듯 2회 행사가 재정 자립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이듬해 열린 3회는 좀 더 활기찼습니다. 영화제가 치러진 9일 동안 무려 20만여 명의 관객이 참여해, 부천이 ‘영상 문화도시’가 될 가능성을 확인시켜줬습니다. 특히 3회 들어 영화제 유료 관람객 지역 분포가 달라졌습니다. 부천 시내 지역 거주민보다 서울 등 다른 지역의 영화 마니아들이 영화제에 많이 와주셨습니다. 이로인해 부천국제영화제가 부천시만의 지역축제가 아닌 전국적인 행사, 국제행사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마치 제 자식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저는 부천 국제 영화제를 부천시의 무형자산 1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화부의 영화제 지원금 삭감 문제'가 마치 제 일인양 신경이 쓰였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덕분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이전 정부의 문화 정책 기조가 잠시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시민이, 관객이 살려낸 영화제
정부 왈가왈부할 권리 없다!

 
저는 문화예술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서포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으로 재직했던 시절, 매년 부천국제영화제를 치러가면서도 그랬습니다. 되도록이면 관이 문화행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관이 관여해서도 안 되지만, 관여하기 시작하면 영화제는 자생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
 
자고로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재미도 없고 흥도 나지 않는 법입니다. 흥이 나지 않으면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들, 내실 없는 것들로 치장할 수 밖에 없고, 보이기 위한 억지꾸밈은 누구보다 관객 여러분들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여러분들이라면 행사의 주인이 되는 자리와 들러리 서는 자리 가운데, 어느 곳에 서고 싶으시겠습니까? 이런 기본적인 원칙을 왜 다들 잊으려고 하는지, 애써 외면하는 지 궁금할 뿐입니다.

이제 제발 딱지 붙이기 놀음은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요? 영화제를 지원하는 돈도 분명 국민의 돈입니다. 당신들의 돈이 아닙니다. 마치 자기들 돈인 것처럼, 눈 먼 돈인 것처럼 그렇게 사용하지 마십시요. 관은 그저 판을 만들어주고, 그 판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잘 자리만 지켜줘도 충분합니다. 그럼 다들 즐겁게, 열심히 놉니다. 그럼 그걸로 됐습니다. 망할 뻔했던 부천 국제 판타틱 영화제를 살려냈던 것이 바로 시민들의 후원이었다는 사실을, 영화를 보러 와준 관객들이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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