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으로
  • 즐겨찾기 추가
  • 시작페이지 등록
  • twitter
  • facebook
공유하기

황희찬이 박지성인줄 아느냐고요?
- 청년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청년대책의 시작입니다.

 

 

▲황희찬 선수 (사진출처: 스포츠서울 http://me2.do/xLO2Q5Yc)

 

황희찬은 우리 오정구 출신의 축구선수입니다. 까치울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죠. 19살의 어린 나이지만 오스트리아 2부 리그 FC 리퍼링의 공격수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올림픽대표팀에 최연소 선수로 전격 발탁되어 주목할 만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중국 우한에서는 4개국 올림픽대표 친선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황희찬은 어제 모로코와의 첫 경기에 후반전 교체 출전했습니다. 비록 득점은 없었고 우리나라가 0:1로 지긴 했지만 황희찬은 시차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하도 황희찬 선수 얘기를 하고 다니니까 누가 “황희찬이 무슨 박지성인줄 아냐고” 면박을 줍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박지성처럼 된 다음에 응원하고 인정해주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물론 황희찬은 박지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박지성처럼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에서의 황희찬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젊은이들 중에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황희찬만 해도 소년출세한 경우죠. 아직 그 이름과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무수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에게는 남과 비교 당하거나 무시 받아서는 안 될 고유의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부천시장을 할 때 도로계획에 따라 뽑아버려야 하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를 일부러 우회해서 길을 내도록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뭐하려 예산을 더 들이느냐고 했지만 그 나무 한 그루가 그와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위대한 시간은 함부로 무시해도 좋을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 나무는 지금까지 마을사람들에게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휴식과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나무를 뽑자고 했던 이들도 저의 결정을 인정해 줍니다. 

 

동네의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아주 작은 묘목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장차 이 땅을 빛낼 거목(巨木)이 되고 미목(美木)이 되고 방풍림처럼 숲을 이뤄 사회를 지켜 줄 무수한 무명의 청년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청년대책의 시작이고 우리사회를 위한 올바른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의 열정을 응원한다는 한 제약회사가 신규채용 면접에 응한 젊은이들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청년일자리 대책 마련에 실패한 대통령은 뜬금없이 청년희망펀드를 만들고 기업에 할당액을 배정해서 돈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을 할 때가 아니라 청년을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 기업과 우리 사회에 정착되도록 해야 할 때입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할 일은 그런 것입니다. 나이 들고 보수적인 사람들 말고 청년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으신가요? 대통령께 묻고 싶습니다.

 

모든 청년들은 그 존재 자체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 국가공동체의 희망이 되어 줄 이 땅의 모든 ‘미생’들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공유하기

*한국일보 기고글입니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가 동반성공하려면"

 

 

이번 6월 국회는 의미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동시에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가 정책으로 실현될지 여부가 결정되는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경제가 현 정부의 경제 기조로 어떻게 자리 잡힐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나라가 1980년대 중화학공업으로 먹고 살던 시절, '로하스(LOHAS) 기업'을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 과연 누가 믿어 주었을까. 당시만 하더라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작물들은 벌레가 먹거나 때깔이 좋지 못한데다 대개 크기도 작았기 때문에 일반 농산물 시장에서는 제값을 쳐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는 신통치 않은 농산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그들이 인정하는 새로운 가치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풀무원식품은 그러한 조건에서 창업되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보관과 유통의 문제 때문에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재래식 두부와 콩나물을 신선하고 안전하게 포장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 이는 분명히 그 당시 산업구조와 인식의 틀을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고객도 자각하지 못하는 고객의 니즈에 부합한 것이다.

 

미래 가치를 현재 가치로, 사람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것이 창조경제이며, '흥부정신, 이타적 경제로의 대전환'이 창조경제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흥부는 제비의 다친 다리를 치료해 주고 많은 재화를 얻었다. 그 재화를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었다. 흥부는 착한 경제 주체이자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제비를 다치게 한 뱀조차 놓아준 생명 중시자다. 이렇게 실천되어야 할 창조경제의 기반이 위기에 처한 세계자본주의와 한국경제 현실에 새로운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창조경제는 경제민주화의 토대 위에서 성공할 수 있다. 대기업 중심의 경직되고 획일화된 경제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혁신적인 기업가도, 창조적인 기업도 불가능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평적 민주적 관계를 형성하고, 각각의 경제 주체가 다양성과 독창성, 창의성을 갖도록 건전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경제성장 없이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례도 찾아보기 드물지만, 민주주의의 확대 없이 경제성장을 장기간 지속한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의 공정함뿐만 아니라 민생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정책의 공정성 측면은 물론 모든 국민의 노동자와 소비자 지위가 유지되고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목표다. 노동 약자와 소비 약자가 '시장의 주체'로서 소외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는 산업정책 측면은 물론 노동과 교육 및 복지정책으로도 접근되어야 한다. 저성장시대에 선순환구조는 복지 확대를 통해 시장의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창조경제가 민생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려면 정부의 실천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게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제민주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말에서 걱정이 앞선다.

 

정책은 철학, 시스템, 사람이 성패를 좌우하는데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정책에는 철학과 사람이 없어 보인다. 경제민주화 정책은 물론 창조경제도 대통령의 순시와 발언에 의존하는 '파편적' 방식으로 추진되어선 곤란하다.

 

정치도 경제처럼 선순환구조를 가지려면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마치 유기농이 토양을 새롭게 하고 먹는 이의 건강을 생각하듯 정치도 공익을 새롭게 하고 국민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유기농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 Previous : 1 : 2 : 3 : 4 : ··· : 53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