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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그 날, 광주에 진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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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불량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대학이라는 곳이 그랬습니다. 한 편으론 민주화를 열망하는 학생들과, 다른 한 편으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학생들이 모여있었던 곳. 막막한 세상에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학사 주점 한 귀퉁이에서 술을 기울이던 시절. 저는 두 번 제적을 당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에야 겨우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왔다는 기쁨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당시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생회 부활운동과 학원 민주화 투쟁의 바람이 불면서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17일에 계엄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다시 수배자가 되었고, 이리저리 도피하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5월 18일, 그 날.
광주에서 그런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 했습니다. 
잘못된 쿠데타에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시민들의 결연했던 의지도 알지 못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군인의 총칼 아래 죽임을 당한 사실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순간, 그 때의 충격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5월 18일 광주는 빚이라 말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지게된 큰 빚.
함께 있지 못 한 빚, 알지 못 하고 알려내지 못 했던 빚,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빚..

그렇게 빚을 진 채로, 아니 빚을 진 덕에 저는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기업인으로서도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계에 와서도 폭력 앞에 소신을 굽히거나 권력에 강제 당하는 일 없이, 그렇게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 그 날을 되돌아 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조금씩 갚고 있다 생각했던 그 빚이, 어느 새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광장은 굳게 닫혔고, 정부는 귀를 막고 있으며, 국민들은 어느새 말 한마디 잘못했다 잡혀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복리도 아닌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원금은 아니어도 이자는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갚은 줄 알았던 이자가 원금만큼이나 많아져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꾸 그 날을 잊으라, 잊어버리고 살라며 등을 떠밉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될까요? 
우리 모두는 30년 전, 그 날의 광주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잊는다고 갚아지는 것이 빚이면 좋겠지만, 빚을 잊어버리면 남는 것은 파산뿐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역사가 그 날을 딛고 서 있는데, 그 날을 잊으면 대체 어디로 가라고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빚 좀 갚아야겠습니다. 
더 이상은 역사를 뒤로 돌리며, 마음빚 늘려가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2008년 시청 앞 광장에서 울려퍼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 다들 기억하시겠지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그 날까지,
이제는 제대로 빚 갚으며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부끄럽지 않게 울려퍼지는 세상이 올 때까지,
정말 제대로 빚 갚으며 한번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참고>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 80년 초 민주화투쟁, 무림사건 
광주광역시 - 80년 봄의 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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