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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언제나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어떤 '한 건'의 유혹에 휩쓸리기가 쉽습니다. 이것 하나만 잘하면 치적이 될 수 있다고, 이것 하나면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꾀는 사람도 주위에 흘러넘칩니다. 이 한 건의 유혹, 솔직히 말씀드려 은근히 뿌리치기가 어렵습니다. 그 열매의 단맛을 본 사람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갖은 반대를 물리치고 뚝심으로 성사시킨 청계천 계발. 그로 인해 지지율은 올라갔고, 그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에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시사in>

생각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이번에 잘됐으니 다음에도 잘 되겠지라는 생각. 그때도 반대한 사람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잘됐다고 평가받는 것처럼, 지금도 반대할 사람들은 반대하지만 결과가 보이면 달라질거라는 생각. 모두 청계천 때문에 생긴 착시입니다. 하지만 청계천과 4대강은 다릅니다. 하나의 경험이 모든 사례에 일반화 될 수는 없습니다. 복개된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것과 멀쩡한 강에 콘크리트를 들이붇는 사업이 같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만들고나면 좋아하게 될 거다'라는 막연한 믿음 앞에 모두 무시당합니다.

...대규모 공사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고 인기를 모을 수 있다는 믿음.
전형적인, 그렇지만 이미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토건 포퓰리즘입니다.

대형 공사가 경기를 부양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미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1990년~2000년대 일본입니다. 당시 일본에선 버블 경제가 무너지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발주하기 시작합니다. 주간지 <시사in>에 따르면 당시 일본정부가 쏟아부은 예산은 매년 약 40조~50조엔(400조~500조원)으로 여겨지며, 전체 노동인구의 10%가 이 부문에서 직간접적 수입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일본 지자체로 내려가면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민관합자 방식을 통해, 무려 1조~2조에 달하는 대형 공사를 연이어 강행한 바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데 어떻게 이런 공사가 발주될 수 있었을까요? 아시다시피 애시당초 일본은 토건 국가였던 것이 하나의 이유입니다. 일본에서 건설사와 정치인, 관료, 금융계의 밀착과 그에 따른 부패는 이미 공공연한 일이니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패가 묵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공사를 통해 일시적이나마 지역 경제가 살고, 일자리가 생기며, 일부분이긴 하지만 정부의 돈이 시장에 직접 유입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시장에 돈을 풀면 어쨌든 경기는 조금이라도 살아나게 되고, 거기에 혜택을 받는 국민들도 생기게 됩니다.

...경기도 살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거기에 정치인들은 스스로 치적이라 자랑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생기지요. 일석 삼조로 보이시나요?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그 결과를 놓고보면 조금 참담합니다.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만들어진 경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간에 엎어지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을 국민 세금으로 해야만합니다. 실제로 미야자키현이 세계 최대의 테마파크로 조성한다고 공언했던 ‘시 가이아 오션 돔’은 2760억엔(2조7000억원)의 채무만 남기고 중단돼 버렸습니다. 한국의 4대강 사업과 비견되는 '슈퍼 제방 프로젝트'를 발표해 세계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요. 덕분에 1990년대에 일본 지방정부들의 채무는 70조엔(700조원)에서 187조엔(1870조원)으로 크게 늘어난 바 있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30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 나라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지 못하고, 대체 산업을 육성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단기적인 미봉책에 급급해 연명한 결과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덕분에 일본은 아직까지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위축된 내수 시장때문에 수출에 의지하는 불안한 경제, 수출확대가 기업 수익 향상과 이에 따른 설비투자 증대, 고용과 소득환경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또다시 내수 시장을 위축시키는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은 지금, 일본이 실패했던 길을 따라가고 있다

결국 일본의 ‘토건국가’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실패한 정책이 한국에서는 왜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요?

4대강 사업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뭔가 치적을 내려는 토목 포퓰리즘은 지자체 곳곳에 퍼져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사진출처 : 시사in>

인천시가 대표적입니다. 인천시는 최근 몇 년간 동시다발적으로 초대형 토목건설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현재 인천에는 인천종합비즈니스센터 등 100~200억원대 건설사업이 다수 진행되고 있으며, 경제자유구역 기반건설, 도시철도 2호선, 2014 인천아시아게임 경기장 등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천시 부채 규모는 2008년 960억원 수준에서 2년간 20배가 넘게 늘어났습니다. 자그마치 2조 3000억원(2009년 말 기준)입니다. 지난해에만 차입과 채권발행을 통해 1조원 정도 되는 막대한 빚을 냈습니다. 올해에도5000~6000억 원 가량의 외부자금을 더 조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굳이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전국 곳곳에선 이런 식의 공사 현장이 즐비하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4대강은 그 결정판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수식어를 달아도 결국, 4대강은 '만들어 놓으면 너희도 좋아할 것'이란 배짱 아래 강행하고 있는 대형 콘크리트 어항 공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어항 공사에 공기업들이 동원되는 것도 어느새 당연시 되고 있고, 그 자리에 정치인들이 자기 사람 앉히는 것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습니다.

... 자연만 파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어딘가부터 총체적으로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이런 느낌을 정말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앙, 지방 정부를 막론하고 토목건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빚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MB정권 출범 이후 증가한 정부와 공기업 부채가 150조원에 달합니다. 4대강사업(22조), 보금자리주택(12조), 30대 선도 프로젝트(126조) 등 MB정부가 추진 중인 굵직한 주요사업(10개)만 하더라도 총사업비가 460조원에 달하며, 이 중 국고부담액은 160조원(MB정부 임기 내 115조원)이나 됩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토목 포퓰리즘을 막지 않으면 안됩니다. ([MB정부 역주행 2년] 빚더미에 앉은 대한민국 참조)

4대강 사업보다 중요한 복지 국가

그래도 성공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토목 포퓰리즘은 단순히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돈이 많이 들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토목 공사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일본의 토목 포퓰리즘이 실패한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책임질 새로운 산업,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세대에 투자해야할 돈이 콘크리트 공사에 투입된 것과 하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돈이 IT 산업에 투자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벤처 창업 지원과 더 많은 보금자리 주택, 사회빈곤층 보호에 투자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몇십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성장 잠재력을 구축하는 데에 투자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역사에 가정은 필요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자르듯 딱-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생각해 보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수십가지 가능성들을 열어놓고 시뮬레이션 해보고는 합니다. 분명 4대강이 아니어도 할 일은 정말로 많습니다. 홍수 예방이 중요하다면 진짜로 예방해야 할 곳에 돈을 쓰면 됩니다. 염된 강이 문제라면 그 오염을 제거할 방안을 강구하면 됩니다. 4대강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의 규모를 감안한다면 그러고도 돈은 남습니다. 그렇다면 그 돈은 분명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 새로운 미래에 투자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국민들이 더 행복한 삶, 충분히 꿈꿔볼만한 미래, 그런 것들을 만드는데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토건 포퓰리즘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미래는 분명히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에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예,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에게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참고 기사  
<시사in> 일본이 폐기한 ‘토건국가’ 길로 가는 한국
<시사in> 인천에 상륙한 ‘토건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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