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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법을 생각한다

 

모처럼 늦은 저녁 TV를 보다가 역사 관련 교양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징비록을 주제로 한 내용이라 조선 시대 군사 운용에 대한 내용도 소개가 되었는데 원앙진법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당시만 해도 병장기를 직접 들고 백병전을 벌이던 시대니만큼 병사를 어찌 배치하여 전투 대열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전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하고 한 편으로는 살벌한 전술 형태에 대해 원앙진법이라는 명칭은 어딘가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원앙이란 부부 간의 사랑과 금슬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새 아니겠어요?

 

궁금증은 이내 풀렸습니다. 원앙이라는 새는 부부 간의 금슬이 너무 좋은 나머지 한 놈이 죽으면 나머지 한 놈이 따라 죽는다고 합니다. 이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 원앙진법인데 말 그대로 전투에 나섰을 때 장수가 죽거나 같은 부대의 병사 중 절반 이상이 죽게 되면 나머지 병사들을 모두 군율로 처형했다고 합니다. 끔찍하지요? 납득하기 힘든 일 아닙니까? 옛날의 전투에서 병사는 곧 무기였고 군사력이었을 텐데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할 병사를 처형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지나치리만큼 가혹하고 엄격한 군율을 적용함으로써 전장에 나서는 병사들 모두가 철저히 팀웍을 따르게 하고 배수의 진을 치도록 만들었다는 거죠. 내 옆의 병사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인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겁니다. ‘원앙진법이라는 말랑해 보이는 명칭 속에는 이토록 비장하고 무서운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군법이 통용되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적한 바를 향한 그 비장함만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 우리 앞에 김영란 법이라는 뜨거운 이슈가 놓여 있습니다. 이 법을 처음 제안한 여성 대법관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지만 내용은 불법로비나 접대 관행을 근절하여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마치 원앙진법처럼 부드러운 이름 속에 아주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죠. 그런데 이 법의 국회통과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애초의 취지를 벗어나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공직사회만을 범위로 하는 법이었는데 국회 해당 상임위를 거치면서 교사 및 교직원, 언론사 기자 및 직원들까지 포함이 되었으니까요.

 

 

       *사진출처: SBS

 

 

적용 대상을 넓힌 만큼 법 시행에 따른 문제가 없도록 철저한 사전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과연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법이 대다수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인지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헌법에 위배된다고까지 말하는 분들도 계신데 과연 우리 헌법이 어느 정도의 금품 수수는 관행이니 봐주라고 되어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물론 정치인, 공직자들이나 잘하지 애꿎은 교사나 기자들까지 끼워 넣을 일이 무어냐고 말하는 분들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 법의 취지가 우리도 힘들어졌으니 너희들도 고생해봐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원앙진법의 목적이 병사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살도록 만드는 데에 있는 것처럼 말이죠.

 

많은 분들의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대상으로 편입되신 교사들의 단체 그리고 대다수 언론인 단체들은 기꺼이 이 법의 취지를 받아들인다고 밝히셨습니다. 희망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는 그분들이지만 기꺼이 법을 받아들이겠다는 존경스런 태도 속에는 저 옛날 원앙진법에 속한 병사들이 가졌던 너도 살고 나도 살아서 나라를 구하자는 비장함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시고 따져봐서 정말 문제 있는 부분은 고쳐야 할 것입니다. 특히 법을 악용하여 언론이나 교육종사자들을 탄압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는 일을 피해야 할까요? 법은 취지를 살려 통과시키고 필요한 대비책은 또 그 나름대로 갖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바라기는 당당하지 못한 낡은 관행을 깨트리고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모처럼의 시도가 좌초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변화와 혁신의 기회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비장한마음가짐으로 김영란 법을 받아들입시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한 단계 더 고양시켜 보자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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