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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고글입니다.

 

'옳은 게 좋은 것'이라는 가르침

 

내가 서울대 교양과정부 학생회장으로 반독재·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당시 학생과장 교수가 부천에 있는 집으로 찾아왔다. 요지는 데모를 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되니 아버지가 말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잘못하는 일도 아닌데 손해 보니 하지 말라는 말을 아비가 자식한테 어떻게 합니까" 하며 요즘 말로 '쿨'하게 딸기만 대접해 보냈다. 얼마 전 소천하신 아버지 원경선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부이자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의 초석을 마련한 생명운동가다.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했다.

1961년부터 45년간 경남 거창고 이사장을 맡아 학생들에게 '이익을 좇아 살지 말라. 정의와 사랑을 좇아 살라'고 가르쳤다. 아버지가 이사장 때 전영창 교장 선생님 역시 우리나라 초창기 미국 유학생 중 한 사람으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1956년 청소년 교육을 위해 거창고를 인수해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 의롭게 행동하라'고 가르친 강직한 분이다.

두 분이 이끄는 거창고는 군사정권 시절 교육 당국과 마찰을 빚어 수차례 폐교 위기에 몰렸다.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도한 학생들을 퇴학시키라는 교육감의 지시를 거부해 교장직을 파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분이나 전영창 선생님 타계 후 교장을 이어받은 전성은 전(前)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장까지 모두 학생들에게 가르친 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바른 교육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버텼다.

진실로 가르치면 진실로 배운다고 했던가. 선생님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감자와 고구마로 끼니를 대신하면서도 참교육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학생들은 불의 앞에서는 동맹휴업으로, 열정적 교육 앞에서는 진지한 배움으로 거창고를 '특별한 명문 학교'로 만들었다.

두 분은 더 이상 계시지 않지만 그 정신은 이어져 거창고의 튼튼한 뿌리가 되었다. 거창고 직업 선택의 십계명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에는 일관되게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는 가르침이 흐른다. 학생들의 적성·소질·관심에 중점을 두는 전인교육, 교문이 없는 열린 교육, 낙오하지 않고 함께하는 교육이 실천되는 학교 교육 혁신의 현장이다.

젊은 시절 내 장래 희망은 중학교 역사 선생님이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정치를 그만두는 어느 시점이 되면 이를 실천하고 싶다. 학생운동으로 학업을 중단한 후 14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복학해 25년 만에 역사 교육 졸업장을 딴 것도 이런 참된 가르침에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아버지 원경선, 스승 전영창 두 분을 떠올리며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는 시구절을 되뇌어 본다.

 

(사진출처: 한국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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