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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기고글입니다.


"아버지의 성경책, 어머니의 밥상"


1998년 민선 2기 부천시장 취임식에서 갑자기 아버지가 연단에 성경책을 들고 올라오셨다. 그 자리에 있던 공무원들과 시민들은 의아해했다. 아버님은 들고 오신 성경책을 내게 주시며 “시정을 성경이 가르친 대로 하라”고 말씀하시고 내려가셨다.

1987년 나는 어렵게 창업한 풀무원식품을 친구에게 넘기고 받은 퇴직금으로 박원순 변호사 등이 운영하는 ‘역사문제연구소’에 합류했고 ‘역사비평’을 발행했다. 6월항쟁과 양김(兩金)의 분열을 몸으로 겪은 뒤 나는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고 아버지께 그 뜻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성경에 있는 대로 바르게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 “정치를 하면서 숱한 돈의 유혹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셨고 “하나님 기준으로 보아서는 장담 못 하지만 사람의 기준으로는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사업을 계속하지 왜 정치를 하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린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 내 뜻을 존중해 주셨다.

50년대 초부터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했던 아버지께서 전쟁고아, 부랑아들과 함께 ‘풀무원’ 공동체를 시작하셨고 우리 7남매도 함께 먹이고 재우셨다. 같이 일해서 함께 먹고 살자는 철학으로, 함께 살자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누구든 받아들였다. 일할 수 없는 사람을 있게 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있게 하셨다.

빈농의 자식이었던 아버지는 서울 돈의동에 있는 서울교회에서 어머니를 만나셨다. 아버지께서 공동체 농장을 꾸리기까지,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을 시작하면서 ‘정농회’를 만들기까지, 거창고등학교 이사장을 맡아 참교육을 실천하기까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고문으로, 환경정의 이사장으로 일하며 환경과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살기까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로 있으면서 어려운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기까지 내 어머니는 남편을 각성한 농부, 생명을 풀무질하는 농부로 성장시킨 아내였다.

공동체 식구들은 다들 지독히 일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쌀이 없어 밀기울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날이 허다했는데 그나마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국물만 드시기가 일쑤였다.

우리 7남매는 미국 자선단체의 구호품 중에 여기저기 나누어주고 그나마 남은 옷들을 얻어 입었는데 그게 학교 가기가 싫었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강원도 가서 감자밥만 먹고 살아도 좋으니 ‘오직 우리만의 아버지, 오직 우리만의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투정을 어머니는 오래 기억하고 계셨다.

하지만 두 분은 당신들이 낳으신 자식뿐 아니라 공동체에 있는 모두를 자식으로 받아들이셨다. 풀무원 공동체에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농사일을 배우러 온 사람도 많았다. 그중의 한 청년이 둘째 여동생인 혜덕이와 결혼했다. 우리집 ‘둘째아들’ 영진이, 홀트복지타운에서 생활하다 1974년 우리 식구가 된 정신지체아 영진이는 새해 첫날이 되면 내 집으로 세배를 온다.

아버지는 올해 1월, 어머니는 4년 전 2월에 소천하셨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서 두 분이 남겨주신 가르침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세상에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면 내겐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신다. 15년 전 아버지께서 주신 성경책은 지금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책상머리에 두고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원혜영(국회의원)


가족, 공동체 식구들과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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