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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메모"

 

 

1. 현상

 미국진보진영의 상징적 인사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의 의문의 피살이 미국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1986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헴프리 민주당 후보는 닉슨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민주당 핵심그룹의 지지로 대통령 후보가 된 헴프리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상대적으로 대중적 지지가 더 많았지만 후보가 되지 못한 멕카시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겨우 투표 일주일을 남겨두고 미적지근한 지지선언을 받아냈을 뿐이었다.

 

 또한 민주당은 헴프리 후보가 베트남전쟁에서 진 존슨 대통령시절 부통령을 지냈고, 이것이 과거이미지로 얼마만큼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다소 불안해하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2. 이유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은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졌다. 민주당정부의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가 추진한 뉴딜정책은 정책의 표면적 성과 외에 30여 년간 꾸준히 외부효과를 발생시켰다.

 

그것은 민주당의 풀뿌리시민사회를 모두 이익집단화 또는 이해관계자로 만든 것이었다.

 

 이익집단화된 시민사회는 더 이상 거리로 나가지 않고도 민주당정부에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기득권과 이익을 지킬 수 있었다.

 

 민주당의 기반은 약해 질대로 약해졌다.

 

 미국 민주당은 좌파 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고 국민의 살림살이보다는 사회정의에 관한 것들 동성애, 낙태, 평화 등의 이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워터게이트로 닉슨 대통령을 한 차례 이긴 것 외에 연패를 거듭했다.

 

3. 혁신

 1985년 클린턴과 고어 등이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하며 DLC(민주지도자협의회)를 창설했다. 이들은 민생 이슈를 민주당이슈로 다시 가져와, 보편적이고 평범한 직장인과 중산층의 지지를 연합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당내 보수파와 일부 좌파 자유주의자들은 물론 공화당의 일부노선까지도 포용했다. 이념적 이슈 대신에 현실 데이터에 근거한 실사구시 정책을 추진했다.

 

2012년 오바마는 이러한 기반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사진: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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