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원경선] <4> 내발로 걷어찬 농장
- Posted at 2009/10/26 06:31
- Filed under 함께 사는 삶 원경선
11살때 접한 신앙평생 지침으로
일제 종교생활까지 간섭에 분노
피땀어린 농장 내놓은 후 서울로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신앙이다. 평생토록 ‘성경과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고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풀무원 공동체를 시작한 것이나 ‘정농회’를 결성해 유기농법에 힘썼던 것도 성경에서 강조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내가 처음 교회를 접한 것은 고향을 떠나 황해도 수안으로 이사한 11살 때였다. 이모를 따라 처음 나간 교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나 ‘아담과 이브의 탄생’ 이야기 등이 모두 생소했지만 머리 속에 쏙쏙 들어왔다. 더욱이 얼마 뒤부터는 교회에 딸린 사립학교까지 다니게 됐으니 교회는 나에게 ‘복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보통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된다. 일제시대 모든 학교에서는 일본 천황의 교시가 담긴 ‘교육칙어’를 암송토록 강요당했는데 조회 등의 행사 때마다 일장기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이 교육칙어를 외워야 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배웠기에 나는 머리를 숙일 수가 없었다. 반일감정은 아니었고 단순히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담임선생에게 혼도 났지만 크게 비화할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학교에서는 그 뒤로 쉬쉬해 버렸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교회는 꾸준히 나갔고 신앙심은 더욱 굳어졌다. 조용한 곳을 찾는다며 산중턱의 무덤가에 올라가 일상의 잘못을 고백한 적도 많았다. 또 다른 교사 5, 6명과 함께 주일학교 선생을 맡아 교회를 이끌어갔던 것도 이 즈음이고 신학을 공부해야 겠다는 의욕도 이 때부터 조금씩 싹텄다.
신앙생활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잠시 가난에서 벗어났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총독부에서 받은 영농자금으로 나는 1만평 정도의 땅을 사고 집도 장만했다. 농사규모가 농장이라 부를 만큼 상당히 커졌다.
그럭저럭 농사에 재미를 붙여가던 스물두살의 어느날, 군청에서 농장을 시찰하러 오겠다는 통보가 왔다. 말이 시찰이지 실은 총독부의 영농자금을 쓰는 수혜자에게 한턱 받아먹겠다는 수작이었다. 더구나 그 날은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를 돌봐야 하는 일요일이었다. 나는 대뜸 “주일날은 교회에 가야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하고는 통지서를 들고 온 군청 직원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교회에 가 버렸다. 그런데 군청 시찰단은 다짜고짜 농장에 들이닥쳤다. 내가 거부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감히 군청의 요구를 거절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군청에서 길길이 날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바로 다음날 군청으로 들어오라는 소환장이 날아왔고 나는 군청 산업과로 직행했다. 군청에 들어서자 “간덩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군, 세상 천지에 그 융자를 못 받아 안달난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뭘 믿고 겁없이 까불지” “가진 것 하나 없는 조센징 주제에…” “천황폐하의 은혜도 모르는 조센징은 혼 좀 나봐야 돼”라는 등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렸다.
가만히 듣고있던 나는 들고온 땅문서며 대출서류 일체를 꺼내놓았다. 그리곤 “교회에 가는 것까지 간섭하려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테니 알아서 하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발길을 돌려 버렸다.
행운처럼 다가오긴 했지만 땀과 꿈도 적잖이 쏟아 부은 농장이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가 하는 아쉬움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홀가분했다. ‘차라리 공부나 더 하자’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그 길로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향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만 믿고 교회 목사의 아들인 막역한 친구 안성겸을 찾아 무작정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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