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 어린 소녀를 죽게 만들었을까
- Posted at 2010/03/25 14:14
- Filed under 지방자치, 원혜영처럼 하면 성공한다!
[기획연재] 지방 자치, 원혜영처럼 하면 성공한다
생각을 바꾸고 관심을 가지면 당신도 볼 수 있습니다
-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을 돌아보며
#.
밤 12시. 골목길 가로등은 벌써 몇 달째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한적한 골목과 사람 없는 빈집들. ... 이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이후 주민들 대부분이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조금만 어두워져도 주변 분위기는 음산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나는 군데군데, 빈집 깨진 유리창이 보인다.
어제 오전, 골목길 아래쪽 빈 집 창문으로 밤마다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난 김에 힐끗 보니 정말로 불빛이 있다. 무슨 일일까 신경은 쓰이지만, 몸도 피곤하고 귀찮기만 하다. 신고해 봤자 어차피 경찰은 오지도 않는다. 무슨 별 일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찾아가서 살펴볼 수도 있고, 휴대전화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냥 집으로 귀가할 수도 있습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그냥 집에 들어가는 것을 택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서 질문을 잠시 바꿔보겠습니다. 만약, 빈 집에 누군가가 갇혀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아마, 그냥 집에 들어가실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분명 경찰에 신고하거나, 몰래 그 빈 집을 살펴봤을 겁니다. 이처럼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 가-에 따라서 사람의 반응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을 접하면서 안타깝고 답답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만약, 경찰이 신고를 받았을 때 납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아니 미리 어떤 범죄가 일어날지 모르니 치안 강화가 이뤄졌다면, 만약 그 아이를 집에 혼자두지 않을 방법이 있었다면...
이 지상에 흥미 없는 것은 없다.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체스터턴
정말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인다라는 옛말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것은 그냥 흘러가버리는 풍경으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항상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야 분노를 표출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생각을 바꾸고 관심을 가지면 그 모든 것들이 보입니다. 누군가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래서 생색나지 않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시민을 위한 정책 발상 역시, 그런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해결책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시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라면,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린 소녀의 시신이 있었다는…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문제의식, 어떤 선입관을 배제하고, 일상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는 힘. 예를 들어, 제가 부천 시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부천 남부경찰서 서장으로 계셨던 분에 대한 이야기다. 남부경찰서 청사는 성주산 기슭 산자락에 지어져 있는데 이분의 눈에 경찰서 부지를 받치고 있는 축대가 영 거슬렸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주변이 깔끔하지 못한 느낌을 주는데 칙칙한 콘크리트 축대가 쭉 이어져 있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서장은 그곳에 옛날 성주산 기슭을 분홍빛으로 수놓았던 복사꽃을 재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인근 학교의 미술 선생님께 직접 부탁하고 페인트와 재료를 자비로 구입해 멋진 복숭아 벽화를 완성시켰다.
이 이야기를 듣고 직접 현장을 가보았다. 벽화를 그려놓은 축대는 보기도 좋았고, 부천의 상징을 알리는 홍보판 역할도 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어 보였다. 보통 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오면 1년도 채 안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게 보통인데 이분은 그 짧은 기간에 지역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좋은 구상을 직접 실천까지 한 것이다.
꼭 부천에 오랫동안 살았다고 지역을 아끼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황량한 콘크리트 옹벽에 복숭아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하는 고도의 지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다. 단지 사물을 주의 깊게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을 습관화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부천에 산다는 우리가 그곳이 보시 싫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않았고, 혹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해도 어떻게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에 이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분의 행동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 ‘발상을 바꾸면 시민이 즐겁다’ 中
관심을 가져야 해결책이 보인다
이런 에피소드가, 정말 작은 이야기처럼 느껴지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사고를 막습니다. 고장난 가로등을 수리한다거나, 빈 집에 사람이 못들어가게 조치하거나, 집에 혼자 있는 아이가 머무를 곳을 만들어주거나,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거나...하는 일들, 알고보면 그리 크지 않은, 참 작은 일들입니다. 그렇지만 해도 티가 나지 않고, 보통은 어차피 없어질 곳인데 뭐...하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둬도 되겠지-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분명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길이 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적극적 의지가 없으면 항상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라는 상태를 면할 수 없습니다. 지극히 보수적인 관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공직자라면, 항상 시민의 입장에서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상태인가, 지금 이 상태가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것인가-라고.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습관화 됩니다. 습관화된 문제의식 가지기는, 세상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속에서 대답을 찾고 고민하는 힘을 길러줄 것입니다. 남탓을 하기보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보다,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합니다. 원래부터 그런 거야-라고 말하기보다, 지금 보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국민의 녹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문제의식들이 모여서 미리 세상을 조금씩 가꿔 나갔더라면....
그 소녀처럼 슬프게 죽어간 아이는, 아마,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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